
2025년 브라질 벨렘에서 열린 COP30은 단순한 기후 회의가 아니었습니다. 5만 명의 대표단이 모인 이곳에서는 외교관, 로비스트, 활동가, 참관인들이 뒤섞여 복잡한 정치적 역학을 만들어냈습니다. 특히 작은 종이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배지는 권력과 소속, 그리고 가시성의 정치를 상징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COP30 현장에서 벌어진 원주민 시위와 배지를 둘러싼 정치적 상징, 그리고 학자와 활동가 사이의 역할 갈등을 통해 국제 기후 회의의 이면을 살펴봅니다.
배지가 만드는 권력 구조와 가시성의 정치학
COP30에서 배지는 단순한 출입증 이상의 의미를 지녔습니다. 블루존이라 불리는 협상 제한 구역으로의 출입을 통제하는 이 배지는 일종의 여권 역할을 했으며, 각 구성원에게 할당된 특정 수의 배지가 불투명한 경로를 통해 배포되었습니다. 배지 소지자는 '당사자', '당사자 초과 인원', '참관인', '언론인'으로 구분되어 각각 다른 출입 권한을 부여받았고, 이는 곧 영향력의 차이를 의미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배지가 책략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배지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거나 동료들과 나눠 갖는 경우도 있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눈에 띄는 활동가 배지나 이전 COP 회의 배지를 달아 소속 단체를 드러내고 참전 경력을 과시했습니다. 반면 블루존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배지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이는 국제회의에서 누가 안에 들어가고 누가 밖에 서 있는지가 결국 영향력을 결정한다는 보이지 않는 권력 구조를 드러냅니다.
원주민 시위 현장에서 배지는 더욱 복잡한 의미를 띠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배지를 드러낸 채 시위를 지켜보았지만, 다른 이들은 배지를 셔츠나 블라우스 아래로 재빨리 숨겨 소속을 감췄습니다. 특징적인 밝은 색상의 목걸이줄은 여전히 그들이 대표단임을 드러냈지만, 배지를 감춤으로써 전술적으로 신분을 숨기려 한 것입니다. 배지를 드러내거나 감추는 행위는 단순히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녔으며, 가시성의 정치 전략을 변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배지의 전술적 활용은 외교 활동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팎에서 벌어지는 대립적 정치의 수단과 목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듭니다. 결국 기후 회의라는 공간에서도 권력은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원주민 시위에 담긴 생존의 목소리
COP30 정문 앞에서 벌어진 원주민 활동가들의 시위는 기후 정책이 단순히 환경 문제가 아니라 생존과 삶의 터전을 지키는 문제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원주민 활동가들은 깃털 장식과 전통 의상을 입고 창을 들며 노래를 부르고 느린 2단계 춤을 추었습니다. 그들이 들고 있는 플래카드의 그림과 포르투갈어 슬로건은 강에 수력 발전 댐을 건설하려는 계획을 포기하고, 자신들의 고향 땅에서 불법 금광 채굴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들의 시위는 도발적이고 직접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정문을 막고 있던 원주민 시위대 주변에는 대부분 백인들로 구성된 또 다른 시위대 무리가 원을 그리며 서서 손을 꼭 잡고 엄숙한 침묵 속에 등을 돌린 채 원주민 시위대를 구경꾼과 경찰로부터 보호했습니다. 바깥쪽 대열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기후 운동 슬로건이 새겨진 셔츠나 단추 장식을 하고 있었고, 간혹 반사 소재의 서양식 두건이나 팔레스타인식 케피예를 쓰고 있었으며, 물론 COP30 공식 배지도 달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개발 문제로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원주민들의 시위는 매우 공감되는 부분입니다. 뉴스에서는 COP 같은 국제회의를 "협상"이나 "정책" 중심으로만 보여주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수많은 이해관계와 감정, 정치가 뒤섞여 있습니다. 원주민들이 댐 건설과 불법 금 채굴에 반대하며 시위하는 장면은 기후 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목소리가 실제로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보여줍니다. 폭력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았고, 보안군이 이런 직접적인 행동에 어떻게 대처할지, 그리고 사태가 악화될 경우 누구를 가해자로 간주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이는 기후 정책이 실제로는 누군가의 삶과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임을 상기시킵니다.
학자와 활동가 사이의 역할 딜레마
막스 플랑크 협회에서 파견되어 참관인 자격으로 COP30에 참석한 연구자는 원주민 시위 현장에서 "이봐요, 막스 플랑크! 우리랑 같이 줄 서세요!"라는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 호명은 참관인과 활동가라는 두 가지 역할 사이에서 갈등하는 연구자에게 입장을 취하도록 강요했습니다. 활동가 줄 주변에 서 있으면서도 원주민 활동가와 COP30 의장 간의 토론을 지켜보고 있던 연구자의 모습은, 다른 기후 활동가들처럼 등을 돌리고 군중을 향해 보호의 표시를 하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인류학자들은 정치적 비전이 비슷한 시위대 사이에서 현장 연구를 할 때 겪는 딜레마를 자주 탐구해 왔습니다. 증거를 제시하는 것과 투쟁에 참여하는 것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그리고 두 가지 모두를 동시에 제대로 해낼 수 없는 경우, 어떻게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 그날 아침, 연구자는 문 앞 줄에 합류하면서 이것이 단순히 현장 연구에서의 전술적 결정인지, 아니면 찰스 헤일이 말한 "투쟁에 참여하지 않고 문화 비평만 하는 것은 게으른 행위"에 부합하는 것인지 내적으로 고민했습니다.
며칠 후 책임 있는 관광 단체를 통해 벨렘 인근의 여러 섬 중 한 곳을 방문하는 여행에서, 연구자는 "막스 플랑크!"라고 외쳤던 여성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녀는 유럽 기독교 단체의 대표 자격으로 COP30에 참석하여 기후 정의를 위한 노력을 직접 목격하고 지지하기 위해 온 반면, 연구자는 과학 및 인문학 분야의 기초 연구를 수행하는 독일 재단의 대표 자격으로 벨렘에 갔습니다. 그는 연구를 목적으로 갔지, 목격하거나 지지하기 위해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소속과 대표단의 지위 차이는 가시성 확보 측면에서도 차이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독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자기 성찰 중심의 이야기보다 기후 문제 해결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더 알고 싶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COP30 현장은 정치, 환경, 사회 운동, 학문, 이해관계가 모두 섞인 거대한 공간이었습니다. 배지라는 작은 물건이 권력과 역할을 상징하고, 원주민의 시위가 생존의 문제를 드러냈으며, 학자와 활동가 사이의 역할 딜레마가 가시성의 정치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현장의 상징적인 이야기뿐 아니라 실제 정책 논의나 변화로 이어지는 부분까지 다루어졌다면 더 설득력 있는 분석이 되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결국 기후 회의의 핵심은 실제 행동과 합의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Hey, Max Planck! You Can Help Us and Join the Line: On Badges and the Politics of Visibility at COP30 / Environmental History: https://www.envirosociety.org/2026/02/hey-max-planck-you-can-help-us-and-join-the-line-on-badges-and-the-politics-of-visibility-at-cop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