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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봉으로 배우는 인류세 윤리 (관찰의 시작, 기술과 분별, 오염된 세계)

story70233 2026. 1. 28. 22:00

양봉으로 배우는 인류세 윤리

꿀벌과 함께하는 삶은 단순한 취미가 아닌,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 그 자체입니다. 끈적한 수액과 벌침, 금가루가 묻은 손을 통해 우리는 환경을 이해하고, '평온의 기도'가 말하는 분별의 지혜를 배웁니다. 이 글은 10년간의 양봉 경험을 통해 발견한 인류세 시대의 윤리적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관찰에서 시작하는 생태적 각성

엘리너 앤드류스가 2009년 양봉을 시작했을 때, 그녀는 꿀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벌에 쏘이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작은 과수원이 있는 아파트에서 시작된 양봉은 그녀의 세계관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처음에는 커다란 장갑을 끼고 서투르게 벌을 다루었고, 아파트 거실에 벌집나방이 떼로 날아다니는 실수도 겪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행착오 속에서 그녀는 "우리는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양봉은 그녀를 지역 환경과 식물에 대한 새로운 책임감으로 이끌었습니다. 이른 봄 손이 닿지 않는 곳에 피어 있는 단풍나무 꽃, 가을의 마지막 아스터,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풍성하게 피어나는 꽃들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예전에는 흔한 잡초로 여겼던 민들레, 옻나무, 열두 가지 종류의 골든로드가 이제는 미국 북동부 지역의 계절을 상징하는 매력적인 존재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건조한 여름이 계속되면 꿀벌의 먹이원을 걱정하게 되었고, 날씨 변화에 더 민감해졌습니다.
이는 "관문 곤충"으로서 꿀벌의 역할을 보여줍니다. 양봉은 단순히 꿀을 생산하는 활동이 아니라, 우리가 얽혀 있지만 너무나 자주 간과하는 생태계의 복잡한 관계를 관찰하게 만드는 매개체입니다. 폴 킹스노스는 지구에 대한 "진정한 애착"이 "지속가능성"이라는 추상적인 개념보다 사람들에게 더 강력한 동기를 부여한다고 주장했는데, 양봉은 바로 이러한 애착을 형성하는 구체적인 실천입니다. 환경 연구가 홀리 진 벅이 말한 "환멸에 빠진" 인류세에서, 양봉은 "매혹은 열정, 관심, 혐오감, 행동, 네트워크, 장소감, 관계 등을 가능하게 하여 사회생태학적 변혁을 가져오고 동원을 위한 더 큰 추진력을 제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실현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남습니다. 이러한 개인적 매혹이 정말 구조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매혹은 강력하지만 개인적이고 불균등합니다. 모든 사람이 벌과 가까워질 수는 없으며, 매혹이 변화의 출발점일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한계도 분명합니다.

몸으로 배우는 기술과 분별의 지혜

도나 해러웨이의 『종의 만남(When Species Meet)』은 인간이 어떻게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인식하고 그들과의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양봉은 바로 이러한 "주의를 기울이는 법"을 배우는 "몸으로 체현된" 실천입니다. 벌집을 살펴보는 것은 오감을 동시에 자극하는 현기증 나는 경험으로, 놀라울 정도로 친밀하면서도 겸손함을 느끼게 합니다. 양봉가를 거의 알아채지 못하는 듯 보이지만 언제든 떼로 공격해 올 수도 있는 낯선 생명체들을 다루는 것입니다.
환경 인본주의자 스테파니 르메나제는 "기술 향상"을 다른 종과의 관계를 고찰하는 방법으로 제시했습니다. 영국 연구자 에밀리 애덤스는 양봉가들이 벌과 벌집에서의 그들의 활동을 "읽어내는" 능력을 개발해야 하며, 이를 위해 "숙련된 시각"과 "주의력 교육"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기술은 본질적으로 맥락과 조건에 반응하고 다른 물질이나 생명체의 한계를 조율하는 것을 의미하며, 르메나제의 표현대로 "다루기 힘든 비인간 존재들과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양봉은 다른 농업 활동보다 훨씬 더 많은 주의를 요구합니다. 꿀벌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먹이를 찾기 때문에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적고, 오히려 자연 현상에 대응해야 하는 부분이 더 많습니다. 여기서 평온의 기도가 등장합니다. "하느님,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 그리고 그 차이를 분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숙련된 양봉가는 바로 이 차이를 구분할 줄 압니다. 바꿀 수 없거나 되돌릴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필요하다면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것입니다.
실제로 기술이란 단순히 행동하는 것만이 아니라 아는 것이며, 더 많이 알수록 행동은 줄어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숙련된 양봉가는 벌통 밖에서 일벌들이 꽃가루를 가져오는지 관찰하여 유충들이 먹이를 얻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벌집을 건드리지 않거나 개입을 미룰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혜는 환경 위기 시대에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더 많은 개입이 아니라 적절한 개입, 언제 물러나야 하는지 아는 것이 진정한 기술입니다.

영구적으로 오염된 세계에서의 책임

앤드류스가 가장 먼저 배워야 했던 것은 벌들을 위협하는 수많은 해충과 질병의 목록이었습니다. 특히 1980년대 미국에 유입된 바로아 진드기는 미국에서 꿀벌에게 가장 큰 직접적인 스트레스 요인입니다. 진드기 관리 방법을 둘러싼 양봉가들의 의견 차이는 "자연적인" 방식에 대한 견해 차이에서 드러납니다. 전통적인 양봉가와 상업 양봉가들은 진드기를 박멸하기 위해 살충제(살비제)를 직접 살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지만, 상당수의 신규 양봉가들은 살비제 사용을 용납할 수 없는 행위로 여깁니다.
하지만 앤드류스는 용기 있게 이러한 이분법을 비판합니다. "살비제 사용이 자연적이지 않으므로 꿀벌에게 해롭다는 생각은 잘못된 이분법입니다. 꿀벌에게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진드기를 관리할 때 더 많은 꿀벌이 살아남습니다." 이는 부실한 진드기 관리로 여러 해 동안 벌통을 잃으면서 얻은 오랜 경험과 학습 곡선에 기반한 것입니다. 여름과 가을에 매달 진드기 검사를 하고, 진드기 수를 줄이기 위해 벌통을 조작하고, 진드기 구제제를 신중하게 사용하는 정기적인 관리가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관용적인 태도는 훼손되지 않은 자연이라는 개념과 "순수한" 자연에 대한 잘못된 향수를 배격하는 학문적 연구들과 일맥상통합니다. 꿀벌의 이중적인 본성, 즉 야생성과 가축으로서의 본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며 농업과 환경의 경계에 서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은 반이원론적 자연관을 보여줍니다. 인류세라는 개념은 꿀벌 관리와 양봉업계 전반에 걸쳐 존재하는 갈등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제기됩니다. 진드기에 대한 걱정이 꿀벌 건강의 정치경제학적 측면이나 환경 건강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양봉가들은 바로아 진드기뿐만 아니라 다른 해충과 질병, 소위 '새로운 생태계', 그리고 '영구적으로 오염된 세상'에서 발생하는 전례 없는 토지 이용 변화의 전 세계적 확산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양봉이 직면한 어려움은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이며, 꿀벌 건강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양봉가에게만 지우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광범위한 변화가 필요합니다.
숙련된 개인 양봉가의 판단과 기술에 많은 무게를 두는 것은 구조적 문제(농약, 토지 이용, 산업 농업, 기후 변화)를 개인의 윤리와 능력 문제로 축소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더 잘 관찰하면, 더 많이 배우면, 더 숙련되면"이라는 논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아무리 잘 관찰하고, 숙련되고, 책임감 있게 행동해도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이미 너무 많이 변해버린 것은 아닐까요?
양봉을 처음 시작한 지 10년 후, 앤드류스와 타일러는 여섯 개의 벌통을 관리하게 되었지만, 두 어린아이 때문에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렸습니다. 그녀는 언젠가 다시 손에 꿀과 수액 향이 배어들어 끈적거리고 향긋해지는 날을 고대하며, 그때 생태학 연구에 몰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글은 희망적이지도 절망적이지도 않은, 인류세에 어울리는 정직한 기록입니다. 손이 더러워질 만큼, 실패를 반복할 만큼, 시간을 들여 분별을 배우는 관계 맺기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순수한 자연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불완전하고 끈적하고 타협적이며 몸을 쓰는 관계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직한 성찰입니다.


[출처]
Technology, Sticky Hands, and the Serenity Prayer / Eleanor Andrews: https://www.envirosociety.org/2025/11/skill-sticky-hands-and-the-serenity-pr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