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여행 항공권을 끊을 때마다 결제 화면 마지막에 등장하는 '탄소 상쇄 옵션'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한동안 그 옵션을 체크했습니다. 몇 천 원만 더 내면 나무를 심는 프로젝트에 기부된다는 설명에, '그래도 나는 뭔가 보탰다'는 안도감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여전히 비행기를 타고, 고기를 먹고, 택배를 시키면서, 단지 돈 몇 푼으로 제 양심을 위로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요.
그린워싱,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법
탄소 상쇄 프로젝트에는 생각보다 많은 허점이 존재합니다. 최근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체 탄소 상쇄 프로젝트의 70% 이상이 원주민과 지역 사회에 실질적인 피해를 입혔고, 약 43%는 배출량 감축 능력을 과장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제가 직접 구매했던 크레딧 중 하나도 알고 보니 '쓸모없는 것일 가능성이 높음'으로 분류된 프로젝트였더군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탄소 크레딧을 샀다는 것만으로 환경 보호에 기여했다고 믿는 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라는 걸요.
그린워싱(Greenwashing)이란 기업이나 제품이 실제로는 환경 보호에 큰 기여를 하지 않으면서도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내세워 소비자를 현혹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실제로 네슬레가 구매한 220만 개의 탄소 크레딧 중 상당수가 효과 없는 프로젝트에서 나온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상위 50개 기업 구매자 중 33개 기업이 상쇄 포트폴리오의 3분의 1 이상을 '쓸모없는 것일 가능성이 높음'으로 분류된 프로젝트에서 구매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려면 몇 가지 기준을 확인해야 합니다. 첫째, 프로젝트가 검증된 탄소 표준(VCS)이나 골드 스탠다드 같은 공신력 있는 인증을 받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둘째, 독립적인 제3자 감사 기록이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셋째, 프로젝트가 원주민 커뮤니티나 지역 주민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지도 중요한 판단 기준입니다. 캄보디아의 Chong 사람들은 2년 넘게 협의 없이 자신들의 땅에서 대규모 탄소 상쇄 프로젝트가 운영되다가 조상 대대로 살아온 영토에서 강제 퇴거를 당했습니다. 이런 사례를 보면 탄소 상쇄가 단순히 환경 문제만이 아니라 인권 문제이기도 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실효성 있는 프로젝트의 조건
탄소 상쇄 프로젝트가 실질적인 효과를 내려면 추가성(Additionality)과 영속성(Permanence)이라는 두 가지 핵심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추가성이란 해당 프로젝트가 탄소 크레딧 수익이 없었다면 실행되지 않았을 것임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어차피 할 일에 크레딧을 붙여서 돈을 받는 게 아니라, 정말로 크레딧 덕분에 새롭게 시작된 프로젝트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영속성은 저장된 탄소가 최소 100년 동안 대기 중으로 다시 방출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조건입니다.
저는 한번은 친환경 제품이라고 적힌 걸 샀다가, 자세히 보니 제조 과정은 그대로인데 탄소 크레딧만 구매한 것으로 '친환경' 딱지를 붙인 걸 발견하고 적잖이 실망했습니다. 그 뒤로는 '탄소중립'이라는 문구보다 실제로 얼마나 배출량을 줄였는지를 먼저 확인하게 됐습니다. 실효성 있는 프로젝트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 검증 가능한 감축량: 배출량이 정확하게 측정되고, 제3자 기관의 검증을 받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 장기 모니터링 체계: 캘리포니아 산림 상쇄 프로그램처럼 크레딧 발행 후 100년 동안 탄소 저장량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검증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야 합니다.
- 완충 준비금 제도: 산불, 가뭄, 질병 같은 위험에 대비해 여러 프로젝트의 일부 크레딧을 보험처럼 따로 보관하는 완충 풀(Buffer Pool) 시스템이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 투명한 정보 공개: 프로젝트 정보, 크레딩 생성 및 소멸 기록이 공공 등록소에 투명하게 기록되어 있어야 합니다.
2022년 한 연구는 탄소 크레딧을 구매한 기업과 구매하지 않은 기업 간의 실제 배출량 감축 성과에 차이가 없다는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이는 단순히 크레딧을 사는 것만으로는 탈탄소화가 자동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줍니다. 진정한 기후 행동은 먼저 직접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고, 상쇄는 정말로 줄이기 어려운 마지막 배출량에 대해서만 고려해야 합니다.
선택법: 신뢰할 수 있는 프로젝트 찾기
탄소 상쇄 프로젝트를 선택할 때는 몇 가지 경고 신호를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합니다. 프로젝트 팀에 대한 이전 법적 문제나 규제 조치 기록이 있다면 일단 의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데이터나 성과 기록의 투명성이 부족한 프로젝트도 피해야 합니다. 프로젝트 완료 후 수년이 지나서야 등록된 경우도 문제입니다. 이는 탄소 크레딧 수익이 프로젝트 개발 결정에 필수적이지 않았음을 시사하기 때문입니다.
신뢰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찾기 위해서는 검증된 탄소 표준(VCS), 골드 스탠드, 기후행동보호구역(CAR), 미국 탄소 등록소(ACR) 같은 공신력 있는 등록 기관에서 인증받은 프로젝트인지 확인해야 합니다(출처: Verra). 이러한 조직들은 다중 이해관계자 개발과 대중의 의견을 통해 엄격한 프로토콜을 만들고, 등록된 모든 프로젝트를 독립적으로 감사합니다.
제 경험상 한 가지 유형의 프로젝트에만 투자하는 것보다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게 현명합니다. 임업 프로젝트, 재생 에너지 프로젝트, 직접 공기 포집(DAC) 기술 등 여러 유형을 조합하면 특정 프로젝트의 실패 위험을 줄일 수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DAC 플랜트는 27개만 운영되고 있으며, 이 중 아이슬란드의 Mammoth 프로젝트가 연간 최대 36,000톤의 CO2를 포집하며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DAC의 자발적 시장 가격은 CO2 톤당 100달러에서 2,000달러 사이로 높은 편이지만, 장기적으로 가장 확실한 탄소 제거 방식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공동 혜택(Co-benefits)입니다. UN 지속가능발전목표와 일치하는 프로젝트는 그렇지 않은 유사한 크레딧보다 86% 더 높은 가격에 판매됩니다. 공동 혜택은 제거된 CO2e 1톤당 최대 600달러의 가치를 더할 수 있습니다. 탄자니아의 Nguru Forest 프로젝트나 에티오피아의 EthioTrees 프로젝트처럼 생물 다양성 복원과 지역 주민 소득 증대를 동시에 이루는 프로젝트가 좋은 사례입니다.
제가 내린 결론
저는 생활 방식부터 바꿨습니다. 가까운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배달 대신 직접 장을 보고, 고기를 먹는 횟수를 줄이고, 필요 없는 물건은 아예 사지 않는 쪽으로요.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고, 무엇보다 '상쇄했다'는 안도감보다 '덜 배출했다'는 실감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탄소 상쇄는 나쁜 게 아니지만,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탄소 상쇄만으로는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은 남은 배출량을 해결하고 순배출량 제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대기에서 탄소를 제거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분명히 했지만, 이는 직접적인 배출량 감축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보완하는 역할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먼저 할 수 있는 건 덜 사고, 덜 쓰고, 덜 이동하는 선택입니다. 그 위에 정말 줄이기 어려운 부분이 남았을 때, 그때 검증된 상쇄 프로젝트를 신중하게 선택하는 게 더 솔직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이 여러분의 기후 행동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 참고: https://www.thegreenshot.io/uncategorized/carbon-offset-projec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