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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결핍 소재 책 "아몬드" (손원평, 심리, 인간성)

by 달려라피터팬 2025. 12. 10.

아몬드 - 손원평 책
아몬드 - 손원평 책

손원평 작가의 소설 '아몬드'는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우리가 어떻게 타인과 연결되고, 감정은 무엇이며, 공감이란 어떤 움직임인지 천천히 묻는 작품이죠. 겉으로는 한 청소년의 성장담처럼 보이지만, 읽다 보면 정서적 결핍과 관계의 본질을 집요하게 파고든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국내외에서 오랫동안 입소문을 타고 있고, 시간이 지나 다시 꺼내 읽어도 묵직한 잔상이 남습니다. ‘감정결핍’이라는 다소 낯선 설정을 중심에 둔 이 소설이 왜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는지, 한 번 짚어보려고 합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 ‘윤재’

'아몬드'의 주인공 윤재는 편도체, 흔히 ‘아몬드’라고 불리는 부분이 작아 감정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아이입니다. 분노, 슬픔, 공포 같은 기본적인 감정조차 희미하고, 사람들의 표정을 읽는 일도 서툽니다. 그러니 주변에서는 자연스럽게 그를 ‘어딘가 이상한 아이’로 구분하고, 윤재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다정하지만 긴장된 보호 속에서 자라납니다.

윤재의 하루는 늘 조심스럽고 규칙적입니다. 그는 감정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일상에서까지 훈련받아왔고, 표정을 관리하는 법, 상황에 맞는 대답을 미리 연습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다 어느 날,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리는 사건을 맞닥뜨리면서 그가 믿고 버텨온 질서가 산산이 부서집니다. 그 이후 윤재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 안에 분명 존재하지만 잘 보이지 않던 감정의 흔적들을 하나씩 발견하게 되고, 독자는 그 과정을 따라가는 입장이 됩니다.

이야기는 자극적으로 속도를 내기보다는, 윤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주변 환경을 차분하게 비추는 데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합니다. 그래서 처음엔 담담해 보이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이 아이는 지금 무엇을 느끼는 걸까?” 하고 자꾸 마음을 들이밀게 됩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인물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데, 정작 독자는 자기 감정을 더 예민하게 자각하게 되는, 조금 아이러니한 독서 경험이 이어집니다. 윤재는 결핍 속에서 성장하고, 우리는 그를 보며 ‘감정을 가진다는 건 어떤 일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감정결핍이라는 심리적 설정의 의미

'아몬드'가 흥미로운 소설에 그치지 않고 오래 회자되는 이유는, 단지 “감정이 없는 아이가 등장한다”는 특이한 설정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 작품은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통해, 오히려 감정이 인간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역으로 잘 드러냅니다. 윤재는 화를 잘 내지 않고, 잘 울지도 못하고, 두려움도 희미합니다. 겉으로는 차분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을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 거리는 독자에게 묘한 감정 이입을 일으킵니다. 윤재는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의 행동, 말투, 주변 인물들의 반응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이 아이의 가슴 안에 무엇이 남아 있을까”를 계속 짐작하게 됩니다. 어쩌면 작가는 독자가 그 빈칸을 채우는 그 순간, 진짜 감정이 움직인다고 믿는지도 모릅니다. 표현이 줄어든 자리에 생기는 간극이 오히려 몰입을 깊게 만들고, 감정이란 것이 꼭 눈에 보이는 격한 반응으로만 확인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끌어냅니다.

또 한 가지 인상적인 점은, 소설이 윤재의 상태를 단순히 ‘고쳐야 할 문제’로 다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윤재의 특성은 그의 결함이라기보다 하나의 기질에 가깝고, 그는 그 안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상처를 견디고, 관계를 이어가려 합니다. 이를 통해 현대 사회가 감정에 대해 갖고 있는 일정한 기준, “이만큼 느껴야 정상이다”라는 잣대에 조용히 질문을 던집니다. 다양한 정서와 반응이 공존해도 괜찮지 않겠느냐는, 조금 넓은 시야를 제안하는 듯한 태도가 느껴집니다.

인간성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책

'아몬드'는 끝까지 “감정이란 무엇인가”를 명확히 정의하지는 않습니다. 그 대신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못해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지, 공감이 서툴러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지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건네죠. 이 물음이 철학이 아니라,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살처럼 느껴지는 게 이 소설의 진정한 힘입니다.

특히 윤재와 친구 곤이의 관계는 작품의 중심 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곤이는 윤재와 정반대에 서 있는 인물입니다. 감정이 넘쳐흐르고, 세상과 부딪히며 온몸에 생채기를 만들어가는 아이. 윤재가 감정을 최대한 통제하며 살아왔다면, 곤이는 감정에 휘둘리며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둘의 비교는 이야기의 긴장을 만들어내면서도, 동시에 “서로 다름에도 연결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두 사람이 부딪히고 멀어지고 다시 엮이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복잡한 층을 가지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느끼게 됩니다. 작가는 누가 옳고 그르다고 단정하지 않고, 그저 각자의 상처와 선택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독자는 어느 한쪽에 완전히 서지 못한 채, 두 사람 모두를 번갈아 이해하려고 애쓰게 됩니다. 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소설이 말하는 ‘인간성’이 또렷하게 드러난다고 느꼈습니다.

『아몬드』는 결국 감정, 공감, 성장, 상처와 회복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하나의 답을 내리기보다는 여러 겹의 생각을 남깁니다. 조용하게 흘러가는 문장들 사이에서 마음 한구석이 계속 건드려지고, 책을 덮고 나서도 “나는 내 감정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라는 질문이 쉽게 가라앉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