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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네 집, 50대 중년에 삶을 돌아보게 하는 박완서 소설

by 달려라피터팬 2025. 12. 11.

박완서 소설 - 그 남자네 집
그남자네 집 - 박완서 소설

 

 

박완서 작가의 '그 남자네 집'은 80년대 한국 사회의 중산층 삶을 이야기하는 소설입니다. 그 안에는 가족, 결혼, 여성의 자리 같은 것들이 촘촘하게 얽혀 있지요. 발표 당시에는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소설으로 많이 읽혔다면, 지금 50대가 되어 다시 펼쳐보면 느낌이 상당히 달라집니다. 예전에 지나쳐 읽었던 장면들이 이제는 내 경험과 겹쳐 보이고, 선택해 온 삶의 방식이나 마음속에 눌러두었던 감정들이 인물들과 묘하게 포개집니다. 그래서 옛날 이야기 같으면서도, 이상하게 지금의 나에게 말을 거는 소설처럼 다가옵니다. 어느 정도 인생을 걸어온 독자라면, 바로 지금 이 시점에 이 소설을 다시 읽어볼 만한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박완서의 시선 – 날카롭지만 따뜻한 현실 인식

'그 남자네 집'은 한 중산층 가정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주인공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말 그대로 ‘그 남자네 집’에 들어갑니다.  “그 집”으로 불리는 공간에서, 그녀는 자기 자리를 찾으려 애쓰지만 주인되는게 쉽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면 안정된 가정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기대, 눈치, 상처 같은 것들이 조용히 켜켜이 쌓여 있지요.

박완서는 그 미묘한 공기를 아주 잘 포착합니다. 중산층 아내가 겪는 부담,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여겨지는 돌봄과 감정 노동, 가족을 챙기면서도 어딘가 소외된 느낌 같은 것들이 세밀하게 드러납니다. 지금 50대 여성들이 지나온 세월을 떠올려 보면, 낯선 이야기가 아니라 “그래,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살았지” 싶은 장면들이 많을 겁니다.

작가의 문장은 차갑게만 현실을 베어내지 않습니다. 날카롭게 보면서도, 인물을 끝까지 미워하지 못하게 만드는 어떤 연민이 숨어 있습니다.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지만, 독자를 몰아세우지 않습니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면 “왜 그때 그렇게 살았냐”고 자책하기보다, 그 시절의 나와 우리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그게 박완서 소설만의 온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0대가 읽을 때 보이는 또 다른 풍경

20대에 이 소설을 읽었을 때는 답답하고 수동적인 여성의 이야기로만 보일지도 모릅니다. ‘왜 더 크게 말하지 못했을까’, ‘왜 그냥 참고 살았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을 수도 있지요.

그런데 중년이 되어 다시 읽는다면, 같은 장면이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예전에는 이해되지 않던 선택들이 이제는 조금씩 짐작됩니다. “그래서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고, 뒤늦게 마음이 움직이는 부분들이 생기는 거죠. 말하지 못했던 사정, 입 밖에 내지 못한 문장들이 눈에 걸립니다.

결혼생활, 아이 키우는 일, 시댁과의 거리, 부부 사이의 어색한 침묵, 일과 집 사이에서 흔들리던 마음까지. 중년이 된 독자라면, 주인공의 감정이 허구라기보다 내 일상에서 한 번쯤 지나갔던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소설이 갑자기 현실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입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을 불러옵니다.
“지금의 나는 이 집에서, 이 삶에서 어디쯤 서 있는 사람일까.”

가족을 위해 많이 달려왔고, 나름대로 잘 버텨왔지만, 내 이름으로 된 자리는 어디인지, 내 마음은 언제부터 뒤로 밀려났는지 새삼 돌아보게 합니다. 그래서 '그 남자네 집'은 나이가 들수록, 특히 50대가 되었을 때 다시 읽을수록 더 깊이 공감하게 되는 책이 됩니다.

삶을 돌아보게 하는 조용한 질문

'그 남자네 집'은 큰 사건이 연달아 터지는 드라마틱한 소설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심심하게 흘러가지도 않아요. 오히려 잔잔하게 흘러가는 와중에, 어느 순간 마음 어딘가를 콕 찌르고 지나갑니다. 그래서 읽다가 문득,

“나도 저런 말을 들은 적 있었지.”,  “우리 엄마 얼굴이 갑자기 떠오르네.”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식이지요.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보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해 스스로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에 가깝습니다.

중년이라는 나이는 자연스럽게 뒤를 돌아보게 되는 시기인데, 이 소설은 그 작업을 너무 공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습니다. 대신 조용히 불을 켜주고, 그 빛 아래에서 자신의 삶을 한 번 천천히 바라보게 합니다.

읽다 보면, 후회나 원망만 남는 게 아닙니다. 그 시절의 나, 그때의 가족, 그 집에 있던 여러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그래도 나, 꽤 잘 버텨왔구나” 하는 마음이 조금씩 생기기도 합니다. 그게 이 소설이 건네는 위로의 방식 같았습니다.

많은 책들이 “앞으로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방향을 제시한다면, '그 남자네 집'은 조금 다른 말을 건네는 듯합니다.
“지금까지 여기까지 와 계셨군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문득 마음 한쪽이 허전해지거나, 나 자신을 한 번 쓰다듬어 주고 싶을 때, 이 소설을 다시 펼쳐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남자네 집'은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고 지금의 나를 비추는 거울처럼 읽히는 작품입니다. 예전에는 “옛날 이야기”로만 느껴졌던 장면들이, 중년이 된 지금은 내 마음에 더 가까이 와닿습니다.

박완서의 시선은 날카롭지만, 마지막에 남는 정서는 이상하게도 따뜻함에 가깝습니다. 삶이 조금 지치고, 나라는 사람을 다시 한 번 바라보고 싶어진다면, 이 소설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 보셔도 좋겠습니다. 어떤 장면에서는 불편함이 올라올 수도 있고, 어떤 문장에서는 뜻밖의 위로를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정답을 알려주는 책이라기보다, “당신 인생의 페이지들을 한 번 넘겨볼까요?” 하고 부드럽게 권하는 책. '그 남자네 집'은 그런 마음으로, 지금의 당신 곁에 두기 좋은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