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애란의 글은 읽으면 읽을수록 현실이 더 명확해진다. 아주 작고 어두운 감정들—눈치 보느라 미처 다 느끼지 못한 어떤 마음 같은 것들—이 문장 안에서 갑자기 또렷해진다. 특히 '바깥은 여름'은 그런 감정들을 이상하리만치 조용하게 건드린다. 억지로 울리는 것도 아닌데, 읽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왜인지 모르지만, 한참을 생각하게 만든다.
'바깥의 여름'을 통해 본 세계관
'바깥은 여름'을 읽고 나면, 왠지 문이 닫힌것 같은, 자꾸 이상한 느낌이 든다. 아니, 닫히는 건지 열리는 건지 잘 모르겠는 그런 문. 아주 평범해 보이는 이야기인데, 그 안에 뭔가 이상하게 먹먹한 공기가 가득하다. 무언가를 잃은 사람들—그게 가족이든, 친구든, 혹은 그냥 일상이든—그런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 상실을 묘사하는 방식이 참 묘하다.
소리 지르지도 않고, 극적인 장면도 별로 없는데… 읽고 있으면 갑자기 목이 메인다. 특히 『입동』이라는 단편이 그랬다. 아이를 잃은 부부가 등장하는데, 대화는 굉장히 덤덤하다. 근데 그 말투, 그 공백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너무 크다. 이런 방식으로 상실을 보여줄 수 있구나, 싶었다. 그냥 슬프다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어떤 감정. 그 감정을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어서, 오히려 오래 남는다.
김애란의 세계는 그런 것 같다. 아주 조용한 방식으로, 사람의 마음 깊은 데를 건드린다. 단정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고. 그냥 그 사람을, 그 상황을 거기에 두고 본다. 보고 나면 나도 모르게 내 기억 하나를 꺼내 보게 된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무너진 적 있었던가, 하고.
김애란의 문체적 특징
김애란의 문장은 말이 아니다. 그냥, 느낌 같다. 설명하지 않는데도 이해된다. 어떤 날은 읽으면서 “이 문장은 어떻게 생각해낸 거지?” 하고 되묻게 된다. 가령, 상실을 계절의 틈이 벌어지는 소리에 비유한 문장이 있다. 그 문장을 보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던 적이 있다. 이상하게 그 장면이 들렸다.
그녀의 글엔 비유가 많지만, 그게 문학적인 기교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냥 내가 그런 생각을 했던 것처럼 느껴진다. 또 하나. 김애란은 웃길 때도 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나 엉뚱한 대사가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데, 그게 또 무거운 분위기를 너무 어색하지 않게 틀어준다. 무겁기만 한 글은 아닌데, 그래서 더 무겁게 느껴진다.
그녀는 문장을 꽤 아끼는 편인데, 그만큼 하나하나에 힘이 있다. 어떤 문장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다시 읽게 된다. 다시 읽으면 조금 다르게 느껴지고. 그런 문장은 많지 않다.
주요 주제와 김애란 문학의 본질
김애란이 쓰는 이야기엔 늘 어떤 ‘남겨진 감정’이 있다. 그것도 설명이 되지 않는 것들이다. '바깥은 여름'을 읽으며 가장 많이 느꼈던 건, 사람은 어쨌든 살아간다는 것이다. 상처를 안고도, 여전히 마트를 가고, 버스를 타고, 전화를 받는다. 그게 어쩐지 더 슬펐다. 어떤 인물들은 분명 다 무너졌을 텐데, 그냥 살아간다.
그녀는 위로하지 않는다. 대신 그냥 곁에 있는다. 가르치거나 이끌지 않고, 다만 ‘이런 사람이 있었다’고 말해준다. 그런데 그게 더 큰 위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가끔 그녀의 글이 너무 조용해서, 마음이 더 시끄러워질 때가 있다. 그래서 책을 덮고도 한참을 그냥 있게 된다. 뭘 느꼈는지 정확히 말할 수는 없는데, 그게 자꾸 생각난다.
요즘처럼 모든 게 빠르게 지나가는 세상에서, 김애란의 문장은 조금은 느리게, 조금은 어긋나게 흐른다. 그래서인지 이상하게 현실보다 현실 같고, 때로는 내가 모르는 내 마음을 먼저 알아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바깥은 여름'은 뭔가 단단히 준비한 상태에서 읽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무방비일 때, 마음이 조금 헐거울 때 읽어야 한다. 그리고 다 읽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글을 쓰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건, 다행이다.” 물론 여전히 뭔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계속 마음에 남아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거 아닐까.
'바깥은 여름'은 뭔가 단단히 준비한 상태에서 읽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무방비일 때, 마음이 조금 헐거울 때 읽어야 한다.
그리고 다 읽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글을 쓰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건, 다행이다.”
물론 여전히 뭔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계속 마음에 남아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