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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기억, 환상, 상실)

by 달려라피터팬 2025. 12. 17.

도시와 그 불확시리한 벽 - 소설책 표지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작품으로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소설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에는 서두름이 없습니다. 이야기는 조용히 시작되고, 환상과 현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한 사람의 기억과 사랑, 그리고 그 정체성을 따라갑니다. 읽다 보면 무언가를 설명받기보다는, 한 공간을 함께 걸어가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이 글에서는 기억, 환상, 상실이라는 세 가지 흐름을 따라, 하루키가 이 소설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조금 더 편안하게 살펴보려 합니다. 하루키 소설이 처음이거나, 이 작품이 어렵게 느껴졌던 분들도 부담 없이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기억: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감정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억’이라는 주제를 끌고갑니다.  주인공이 젊은 시절 사랑했던 소녀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 기억은 아주 오래전 일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현재형으로 남아 있습니다. 마치 아직 끝맺지 못한 이야기처럼 말이지요.

하루키는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감정이 있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특히 사랑, 후회, 상실 같은 감정은 조용히 우리 마음 안에 머물며 살아가는 방향에 영향을 줍니다. 겉으로는 잊은 것 같아도, 문득 어떤 계기로 다시 떠오르곤 하지요.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은 어땠을까?” 
주인공의 기억은 특별하지 않아서, 오히려 독자의 기억과 쉽게 겹쳐집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안 어딘가에 있던 낮익은 기억처럼 조용히 건드리는 느낌을 줍니다.

환상: 현실과 꿈 사이의 세계

이 작품에는 하루키 특유의 환상적인 공간이 등장합니다. 주인공은 현실과, ‘벽’으로 둘러싸인 신비한 도시를 오가게 됩니다. 그 도시는 낯설지만 묘하게 안정적인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 도시에서는 기억이 완전하지 않고, 말과 글도 자유롭지 않습니다. 감정은 존재하지만 마음껏 표현되지 않고, 사랑 역시 조용한 형태로 머뭅니다. 처음에는 이 설정이 낯설게 느껴져 거부감이 들수도 있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점점 익숙해집니다.

하루키는 이 환상의 공간을 통해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은 과연 진짜 일까?
혹시 우리도 모르는 사이 어떤 이야기 속을 걷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요.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이 소설의 분위기는, 사실 우리의 일상과도 닮아 있습니다. 분명 현실을 살고 있지만, 마음속에서는 늘 불확실한 감정과 생각들이 오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 환상은 도피라기보다, 오히려 현실을 비추는 또 하나의 거울처럼 느껴집니다.

상실: 조용히 떠나간 것들에 대하여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 상실은 큰 사건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이나 극적인 이별보다, 서서히 멀어지고 희미해지는 관계들이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한때는 분명히 중요했던 사람과 행복했던 순간들이, 어느새 말없이 사라지고 그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하루키는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 것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라진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 상실은 울음이나 분노가 아니라, 고요함으로 그려집니다. 그래서 더 깊게 남습니다.

이런 상실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감정일 겁니다. 크게 다투지 않았지만 멀어진 관계, 이유를 설명할 수 없지만 사라진 마음들. 그래서 이 소설의 상실은 낯설지 않고, 오히려 개개인의 기억처럼 다가옵니다.

결론: 요약 및 Call to Action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신비한 도시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지만, 결국은 한 사람의 마음을 따라가는 소설입니다. 잊지 못한 기억,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의 방황, 그리고 조용히 쌓여온 상실의 감정이 이 작품을 이루고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과, 아직 마음속에 남아 있는 감정들에 대해 말합니다.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이 벽을 넘어 다른 도시를 다녀온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도 모릅니다.

바쁘고 복잡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내 안에 남아 있는 기억과 감정을 돌아보고 싶다면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조용히 손을 내밀어주는 책이 될 수 있습니다. 읽고 난 뒤에도 오래 여운이 남는, 그런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