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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책, 고전으로 보는 사회풍자 (세르반테스,현실과이상)

by 달려라피터팬 2026. 1. 5.

돈키호테 -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그냥 “풍차에 돌진한 남자 이야기”로 끝내기엔 너무 큰 소설입니다. 겉으로는 웃기고 허술한 모험담처럼 보이는데, 그 안에는 인간이 현실을 어떻게 견디는지, 이상을 붙잡는 마음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같은 질문이 계속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2026년에 읽어도 낡지 않습니다. 오히려 요즘 같은 시대에 더 또렷하게 들어오는 부분도 있어요. 비꼬는 듯하면서도 정은 남겨두는 유머가 있고, 세상을 찌르면서도 사람을 미워하진 않는 눈빛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돈키호테'를 다시 꺼내 들고, 그 이야기가 오늘을 어떻게 비추는지 한 번 천천히 따라가 보겠습니다.

현실 도피인가, 이상 추구인가?

'돈키호테'의 주인공 알론소 키하노는 기사 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나머지, 현실 감각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를 떠돌이 기사 ‘돈키호테’라고 부르며 길을 나섭니다. 녹슨 갑옷을 걸치고, 초라한 말을 타고, 세상의 악을 물리치겠다는 마음으로요. 풍차를 괴물로 착각해 돌진하는 장면이 유명한 이유도, 그가 얼마나 현실과 엇나가 있는지를 단번에 보여주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죠. 분명 우스꽝스럽고 무모한데, 보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찔립니다. 돈키호테는 현실의 부조리를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지 못합니다. 차라리 자신이 믿고 싶은 세계를 만들어서라도, 그 세계 쪽으로 걸어가려 합니다. 실패할 걸 알면서도요.

2024년을 사는 우리도 비슷한 곳에 서 있을 때가 있습니다. 현실은 빡빡하고, 이상은 멀고, 그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게 ‘현명한 방법’이라고 배웁니다. 그런데도 마음 한편에서는 그런 생각이 올라오죠. 이렇게만 사는 게 맞나. 적당히 순응하는 게 진짜 어른스러움인가.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통해 말합니다. 인간이 늘 이성적으로만 움직이는 존재는 아니라고요. 오히려 비현실적인 믿음이 때때로 더 큰 진실을 건드릴 수도 있다고요. 돈키호테의 광기는 풍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상을 품는 마음에 대한 묘한 존중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인물은 웃기면서도, 이상하게 오래 남습니다.

세르반테스의 사회풍자와 오늘의 현실

'돈키호테'가 쓰인 시대는 스페인의 가치관과 질서가 크게 흔들리던 시기였습니다. 세르반테스는 몰락해가는 귀족, 위선적인 성직자, 부패한 권력, 무지와 욕심 속에서 흔들리는 사람들을 날카롭게 비춥니다. 그러면서도 “너희가 나쁘다”라고 단정하기보다는, 그런 사회가 사람을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 보여주는 쪽에 가깝습니다.

돈키호테가 길에서 마주치는 인물들은 대부분 현실에 익숙해진 사람들입니다. 체면을 지키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이익을 챙기고,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약자를 밀어내고, 남의 꿈을 웃음거리로 만듭니다. 돈키호테는 그들 속에서 계속 튀고, 계속 실패하고, 계속 놀림을 받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실패가 쌓일수록 세상의 낯빛이 더 이상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독자는 어느 순간 생각하게 됩니다. 정말 미친 사람은 돈키호테일까, 아니면 그를 조롱하는 세계일까.

이 지점이 2024년과 맞닿습니다. 요즘은 진실보다 이미지가 앞서고, 사람은 내용보다 ‘보여지는 모습’으로 평가받기 쉽습니다. SNS와 미디어 속에서는 웃기면 이기고, 멋있으면 옳아 보이고, 다들 아무렇지 않게 한 사람을 소비합니다. 그런 세계에서 돈키호테는 비현실적인 존재처럼 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비추는 현실이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세르반테스의 풍자가 오래가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세상을 비웃되, 사람을 버리지 않습니다. 인간의 나약함과 위선을 꼬집으면서도, 그 안에 연민을 남겨둡니다. 그래서 돈키호테는 ‘미쳐버린 인물’이라기보다, 어쩐지 가장 인간적인 존재로 기억됩니다.

고전이 말하는 2026년의 인간성

'돈키호테'는 400년이 넘은 소설이지만, 인간을 보는 시선은 지금도 충분히 통합니다.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시대 비판을 넘어섭니다. “너는 무엇을 믿고 사느냐”, “그 믿음을 끝까지 지킬 수 있느냐” 같은 더 근본적인 질문에 가깝습니다.

돈키호테는 계속 실패합니다. 하지만 그 실패 속에서도 어떤 품위를 놓치지 않습니다. 그가 믿는 세계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지 몰라도, 그 믿음은 주변 사람들을 흔들어 놓습니다. 그리고 그 흔들림이 때때로 현실보다 더 진하게 남습니다.

산초 판사도 흥미롭습니다. 처음엔 전형적인 현실주의자입니다. 배고프면 밥이 먼저고, 꿈보다 당장 눈앞의 이득이 중요한 사람이죠. 그런데 돈키호테와 함께 다니며 조금씩 물듭니다. 완전히 바뀌진 않지만, 현실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마음을 알게 됩니다. 이 변화가 '돈키호테'를 단순한 풍자에서 한 단계 끌어올립니다. 인간은 이성과 현실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걸, 산초가 몸으로 증명하니까요.

2024년의 우리는 전략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듣습니다. 계산하지 않으면 손해 본다고도 하고요. 그런데 '돈키호테'는 그 와중에 슬쩍 묻습니다. 그렇게만 살아도 괜찮은가. 그 방식이 너를 지켜주긴 하지만, 너를 텅 비게 만들진 않는가.

그래서 이 고전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우리를 흔드는 질문을 품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