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땐, 뭔가 기묘하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년 전에 쓰인 이야기인데, 어째서 이렇게 오늘 이야기처럼 느껴질까 싶기도 했고.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인간의 감정, 자유 같은 것들을 깎아내면서 만들어낸 ‘완벽한 사회’를 보여준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도 없고, 다들 행복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 불편하다.
기술이 너무 발전한 사회는 결국 인간성을 포기하게 되는 걸까.
읽고 나면 마음에 무겁게 남는 문장이 있다. 그리고 오래 잊히지 않는다.
책 주제: 통제된 사회와 인간 본성
이 세계에선 사람이 '태어난다'는 말이 더 이상 맞지 않는다.
공장에서 ‘제작’된다고 해야 할까. 유전자 설계부터 계급 분류까지, 모든 게 계획되어 있고, 그 계획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
그냥 정해진 대로, 정해진 역할을 하며 살아간다.
놀라운 건, 사람들이 그걸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는 거다.
슬프면 약을 먹고, 불안하면 또 약을 먹는다. ‘소마’라고 불리는 그 약 하나면,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아도 된다.
불행할 이유가 없어진 사회. 그런데, 진짜 그런 걸까?
작품 속에서 존이라는 인물이 그런 질문을 던진다.
“나는 불행할 권리를 원한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잠깐 멈췄다. 이상하게 그 문장이 계속 맴돌았다.
그건 단순히 불행을 선택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감정 자체를 되찾고 싶다는 뜻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장면에서 이 소설이 하고 싶었던 말이 다 드러난 것 같았다.
자유와 감정을 포기한 채 안정만을 추구하는 사회.
그 안에서 인간다움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멋진신세계 줄거리 요약
배경은 미래, 이름은 ‘세계 국가’. 사람들은 시험관에서 태어나고, 정해진 계급에 따라 교육받고 살아간다. 자연분만은 금지되어 있고, 가족이란 개념은 아예 사라졌다. 사랑도, 질투도, 갈망도 없는 사회. 버나드 마크스는 이 체제 안에서 조금 어긋나 있다.
알파 계급인데도 체격이 작고, 남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그는 친구 헬름홀츠와 함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나누며 살아간다.
그러다 '야만인 보호구역'에서 존과 린다를 만나게 된다.
린다는 예전에 이 사회를 떠났던 여성이고, 존은 그곳에서 자란 그녀의 아들이다. 버나드는 이들을 문명 세계로 데려오고, 세상은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한다.
존은 그 사회에 충격을 받는다. 모두가 웃고 있지만, 아무도 진심이 없다. 슬픔이 없다는 게, 진짜 행복일 수 있을까?
그는 점점 더 고립되고, 결국 혼자가 되기를 선택한다.
그리고... 끝은 잘 알려진 대로 비극적이다.
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책을 덮지 못하고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장면이 너무 생생해서. 존이 택한 마지막 선택이 옳았는지 아닌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핵심내용과 인물 분석
존이라는 인물은 결국 이 소설의 중심이다.
그는 인간의 감정을 가지고 살아왔고, 그래서 문명 세계의 냉혹함에 누구보다 먼저 반응한다. 화내고, 반발하고, 견디지 못한다. 어쩌면 우리도 그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는 게 더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
버나드는 약간 다르다. 체제 안에 있지만,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또 결정적인 순간엔 망설인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나 같아도 그랬을 것 같다.
헬름홀츠는 말하자면 그 둘의 중간쯤. 지적인 동시에 감정이 있고, 때로는 더 멀리 보는 인물이다.
소설 전체를 보면 ‘소마’가 자주 등장한다.
슬프면 약. 스트레스 받아도 약. 생각하지 않도록, 질문하지 않도록 만든다. 이 설정이, 왜인지 모르게 지금 우리 현실과 겹쳐 보였다. 무언가를 외면하고 있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
읽다 보면 자꾸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진짜 인간답게 산다는 건 뭘까?’
정해진 삶, 편안한 삶, 안정된 삶. 거기서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읽고 나면 기분이 좀 이상하다.
막 울컥하거나 감동적이진 않은데, 계속 마음에 남는다.
정리도 안 되고, 누군가에게 쉽게 추천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이상하게, 누군가는 꼭 읽었으면 좋겠다.
기술이 모든 걸 해결해주는 세상.
하지만 그 끝에 남는 건 인간일까, 시스템일까.
헉슬리가 던진 질문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