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선란 작가의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는 감성적인 문장과 서정적인 상상력이 어우러진 한국형 SF 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외로운 사람과 낯선 환경을 통해 우리의 감정과 존재에 대해 조용히 질문하게 만듭니다.
고립된 환경 속 인물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내며, 단순한 외계 이야기로 그치지 않고 기억, 상실, 존재, 관계라는 깊은 주제를 문학적으로 풀어냅니다. 이 글에서는 이 소설의 줄거리 요약과 함께 서사 구조에 담긴 철학적 메시지를 2026년 독자 시선으로 분석해봅니다. 빠르게가 아닌 천천히 곱씹으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도록 살펴볼 예정입니다.
줄거리 요약: 고립된 행성과 인간 관계의 재구성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의 배경은 제목 그대로 ‘아무도 오지 않는’ 외딴 행성입니다. 인간이 거의 방문하지 않는 이 외부 행성에는, 오직 한 명의 연구원 '라키'와, 그를 도우며 존재하는 인공지능 로봇 ‘포’가 있습니다. 이둘은 고립된 공간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며, 인간과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됩니다.
인간과 로봇 단 둘만이 존재하는 이 공간은 SF라는 장르적 외피를 갖추고 있지만, 실상은 정체성, 관계, 그리고 기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라키는 특정 기억을 잃은 채 이 행성에 머무르고 있으며, 로봇 포와의 반복적인 대화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와 과거에 대해 조각을 맞춰갑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인 고독, 그리고 기억이 ‘진짜 나’를 어떻게 구성하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소설은 겉으로는 조용한 일상처럼 흘러가지만, 내면에서는 끊임없는 자기 탐색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라키는 "나는 왜 여기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포는 그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 대신 라키를 지켜보며 동행합니다. 이 둘의 관계는 단순한 인간-기계의 주종 관계가 아닌, 감정의 유무를 뛰어넘는 존재적 연대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과정에서 우리는 함께한다는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해받는 감정이 어디서 시작되는지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됩니다.
2026년 지금, 우리는 사회적 연결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개인은 점점 더 고립되고 있습니다. 라키와 포의 이야기는, 결국 누구나 경험하는 고립 속 관계의 형태와 의미를 은유하는 서사라 할 수 있습니다.
해석 1 : 기억은 나를 어떻게 구성하는가?
천선란은 이 소설을 통해 ‘기억’이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라키는 중요한 기억을 잃었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스스로 과거를 복원하려 합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기억 찾기가 아니라 내가 누구였는지 다시 알아가는 과정으로 보입니다.
이때 ‘포’는 기억을 저장하고 관리하는 존재로, 라키의 과거를 알고 있지만 모든 진실을 바로 전달하지는 않습니다. 이 설정은 매우 문학적입니다. 작가는 기억이 곧 정체성임을 전제하고,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제시합니다. 포스트모던 문학에서 자주 다루는 기억의 파편화, 진실의 불확실성이 이 소설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독자는 라키의 기억이 복원되어가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나의 과거는 정말 나의 것인가?”라는 자아적 질문에 다다르게 됩니다. 또한 기억은 단순히 정보의 집합이 아니라, 감정과 함께 저장되고 재해석되며 변화되는 ‘유동적인 정체성의 중심’으로 그려집니다. 라키가 과거의 사건을 단순히 떠올리는 것이 아닌, 그 기억을 다시 경험하고,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과정이 주요 서사로 작용합니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의 기억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나를 만들어가는 힘입니다.
그리고 그 흐름을 통해 독자는 문학이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기능, 즉 자기 이해와 수용의 서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핵석 2 : 존재와 관계, 인간-비인간의 경계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는 인공지능 로봇 '포'를 등장시킴으로써 인간과 비인간 존재 간의 관계를 탐색합니다. 포는 감정을 ‘가지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그 행동과 언어에는 분명한 따뜻함과 이해의 흔적이 담겨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작가는 인간답다는게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꺼냅니다. 이는 독자에게 묻습니다. 감정이 없다고 말하는 존재가, 타인을 위로하고 돌본다면 그는 감정 없는 존재인가? 이 소설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허무는 방식을 통해 존재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다시 묻습니다. 우리는 흔히 생물학적, 감정적 특징으로 인간을 정의하지만, 이 소설은 행동과 태도, 관계를 만들어가는 방식이 곧 존재의 진정성임을 보여줍니다. 라키와 포는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해가고, 함께 외로움을 견디며, 심지어 이별을 준비합니다. 그들의 관계는 사랑이라 말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우정이라 부르기엔 또 다른 결이 있습니다. 그래서 두 존재에 대해 이름 붙이기보다는 함께 했다는 사실 자체에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 둘은 서로를 통해 자기 존재를 재확인하고 성장했다는 점입니다. 천선란은 독자에게 조용히 말합니다. "타인의 존재가 내게 닿는 순간, 우리는 함께 살아 있는 것"이라고. 이 철학은 2026년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외로움 속에서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메시지로 강하게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