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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로 본 현대사 (한국전쟁, 좌파, 삶)

by 달려라피터팬 2025. 12. 22.

아버지의 해방일지 책
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한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단순히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 가족의 기억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 그 안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마음까지 함께 드러납니다. 아버지의 삶을 들여다보는 과정은 곧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을 다시 바라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읽을수록 개인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모두의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1. 한 남자의 삶,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

이야기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의 장례식을 치르는 과정 속에서 펼쳐집니다. 죽은 아버지는 한때 해방운동가였고, 좌익 활동을 했던 인물입니다. 화자인 딸은 아버지를 보내며, 그동안 제대로 알지 못했던 그의 삶을 하나씩 마주하게 됩니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해방 직후의 혼란 속에서 좌익 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이후 감옥을 오가고, 숨어 지내며, 가족 곁을 오래 지키지 못한 채 살아왔습니다. 그의 삶은 늘 정치와 이념의 한가운데 있었고, 그로 인해 가족과도, 사회와도 끊임없이 부딪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설은 아버지의 개인사를 따라가며 한국전쟁, 이념 대립, 군사 정권 시기, 민주화의 흐름까지 자연스럽게 보여줍니다.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을 뿐인데, 어느새 우리 사회가 지나온 시간들이 겹쳐 보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 부모 세대는 어떤 시대를 살았을까?”.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하며 버텨왔을까?”
아버지 한 사람의 인생이, 그 시대를 살아낸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로 겹쳐지는 순간입니다.

2. ‘좌파’라는 단어가 남긴 흔적

소설 속 아버지는 평생 ‘좌파’로 불렸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책 속에서 흔히 떠올리는 이념적 인물과는 조금 다릅니다. 그는 말보다 행동으로 사람들을 도왔고, 가난한 이웃과 노동자의 편에 서려고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 ‘좌파’라는 말은 오랫동안 무거운 낙인이었습니다. 그 단어 하나로 사람은 의심받고, 멀어지고, 배제되었습니다. 아버지 역시 그랬습니다. 동네에서도, 사회에서도, 심지어 가족 안에서도 완전히 이해받지 못한 채 살아왔습니다.

딸 역시 아버지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미움과 거리감, 이해하려는 마음이 뒤섞인 채로 아버지를 바라봅니다. 하지만 장례식을 치르며 아버지의 삶을 하나씩 되짚는 과정에서, 그녀는 그를 단순한 ‘이념의 사람’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 보게 됩니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우리가 쉽게 쓰는 ‘진보’, ‘보수’, ‘이념’ 같은 말들이 실제 삶에서는 얼마나 복잡하고 아픈 문제인지 느끼게 됩니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멀어지고, 말하지 않게 되고, 결국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를 포기해버린 관계들. 지금 우리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3. 아버지를 보내며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것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장례식이라는 공간 안에서 천천히 흘러갑니다. 장례식은 슬픔의 자리이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딸은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자신의 삶도 함께 돌아보게 됩니다. 왜 아버지를 미워했는지, 왜 이해하려 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그 미움 뒤에 무엇이 있었는지를요.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했던 기억들이,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다른 얼굴로 다가옵니다.

이 소설이 좋은 이유는, 감정을 억지로 몰아붙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울라고 하지도 않고, 화해를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놓을 뿐인데, 오히려 그 차분함이 더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읽는 사람 역시 자연스럽게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됩니다. 실제 아버지일 수도 있고, 나를 키워준 어른들, 혹은 한 시대를 버텨온 이름 없는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결론: 요약 및 Call to Action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한 가족의 사적인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결국 한국 현대사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우리가 쉽게 지나쳐왔던 아버지 세대의 선택과 고통,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인간적인 얼굴을 다시 보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과거를 미화하지도, 단정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이해하려는 자리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지금을 사는 우리가 과거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그리고 서로 다른 삶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조용히 묻는 소설입니다. 천천히 읽어도, 오래 남는 책을 찾고 있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