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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책 (위로, 여자, 마음)

by 달려라피터팬 2025. 12. 14.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책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큰 사건으로 밀어붙이는 소설이 아닙니다. 오히려 조용한 쪽이에요. 그런데 그 조용함이 묘하게 오래 남습니다. 사람 사이에 생기는 감정의 흠집, 말로는 다 못 하는 고통, 그래도 어디선가 아주 작게 이어지는 희망 같은 것들. 이 책은 그런 걸 한 겹씩 조심히 펼쳐 보입니다. 저는 읽는 내내 “괜찮아”라는 말을 크게 듣기보다는, 누가 옆에 앉아 있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 글에서는 ‘위로’, ‘여성’, ‘연대’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이 소설이 왜 지금 더 마음에 닿는지 천천히 따라가 보려 합니다.

작은 위로로 다가오는 문장들

제목부터 그렇죠. ‘아주 희미한 빛’이라니. 이 소설은 누군가를 번쩍 들어 올려주는 방식이 아니라, 손끝에 닿는 온기처럼 다가옵니다. 인물들도 대체로 명쾌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고, 그래서 더 아프기도 합니다. 우리도 대부분 그런 상태로 살잖아요. 이유를 정확히 말할 수는 없는데 계속 쌓이는 피로, 정리되지 않는 마음 같은 것들.

최은영의 문장은 과하게 달래지 않습니다. 감정을 크게 설명하지도 않아요. 그런데 그 절제가 오히려 독자의 마음을 건드립니다.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럼에도 눈을 피하지 않는 순간. 말은 없는데 마음이 조금 움직이는 장면.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아, 그때 내가 그랬구나” 하고 뒤늦게 알아차리는 감정들. 이 작품이 건네는 위로는 그런 방식으로 옵니다.

읽다 보면 문득 멈추게 됩니다. ‘나도 이런 날이 있었지’ 하고요. 별것 아닌 하루를 버티는 일이 사실은 꽤 큰 용기라는 걸, 이 소설은 조용히 떠올리게 합니다. 거창한 위로가 아니어도 괜찮다고요. 희미해도 빛은 빛이니까.

여자들의 진짜 이야기

최은영 소설에는 여성들이 자주 중심에 서 있습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도 마찬가지예요. 다양한 여성 인물들이 등장하고, 각자의 상처와 회복이 지나치게 꾸며지지 않은 얼굴로 그려집니다. 이들은 멋지게 단단한 사람으로만 남지 않습니다. 흔들리고, 주저하고, 관계에서 어긋나기도 합니다. 저는 그 점이 오히려 믿음직했습니다. 현실의 사람은 그렇게 완벽하지 않으니까요.

이 소설이 보여주는 여성의 삶은 개인의 성격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회 속 자리, 기대, 침묵해야 했던 순간들이 감정과 얽혀 들어가죠. 그래서 인물들의 선택이나 망설임이 ‘성격 탓’으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그 복잡함이 살아 있어요.

특히 이 작품은 여성이 여성에게 건네는 감정에 오래 머뭅니다. 단순히 “여성이니까”가 아니라, 같은 결의 상처를 알아보는 눈, 말없이 이해하는 방식 같은 것들요. 그 공감은 여성 독자에게만 닿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고통을 가볍게 넘기지 않는 태도, 그게 결국 사람을 사람 쪽으로 데려가니까요.

서로 기대고 버티는 마음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연대를 크게 외치지 않습니다. 구호도 없고, 멋진 결의도 없습니다. 대신 아주 작은 연결이 있습니다. 친구 사이의 어색한 침묵, 가족 사이에 걸린 미안함, 연인 사이에 생긴 거리감. 말로 꺼내기 어려워서 더 자주 지나치는 감정들이죠. 이 소설은 그런 순간을 놓치지 않습니다.

최은영이 보여주는 연대는 “무엇을 해줬다”가 아니라 “곁에 남아 있다”에 가깝습니다. 인물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완전히 끊어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순간들이 있어요. 저는 그게 더 단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연대가 늘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걸 이 책은 알고 있는 것 같거든요.

누군가를 돕는 일이 꼭 해결해주는 일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것, 도망치지 않는 것. 그 정도만으로도 사람은 조금 덜 외로워질 때가 있습니다. 요즘처럼 각자 살아남기 바쁜 시기에는, 그런 연결이 더 귀하게 느껴지고요.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말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위로를 급하게 주지 않습니다. 대신 오래 곁에 있습니다. 여성들의 섬세한 감정선, 관계 속에서 생기는 작은 연대, 그리고 희미한 빛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충분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천천히 남습니다. 저는 이 책이 “괜찮아질 거야”라고 단정하지 않는 점이 좋았습니다. 대신 “그래도 네가 여기까지 왔네” 하고 조용히 인정해주는 느낌이었거든요.

요즘 마음이 쉽게 닳는다면, 누군가에게 말을 붙이기조차 버거운 날이 있다면, 이 책을 한 번 펼쳐보셔도 좋겠습니다. 다 읽고 나서도 뭔가가 크게 바뀌진 않을 수 있어요. 다만, 마음 한쪽이 아주 조금 덜 어두워지는 쪽으로 기울지도 모릅니다. 그런 변화면, 충분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