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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행성·여우·뱀) 재조명

by 달려라피터팬 2025. 12. 28.

어린왕자 표지
어린왕자 표지

 

 

'어린 왕자'는 이상하게 자꾸 꺼내 읽게 된다.

어릴 땐 그냥 동화인 줄 알았는데, 몇 해 지나고 다시 읽으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 있다. 지금은 여우가 했던 말들이, 또 뱀이 건넨 짧은 문장이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이 글에선 그중에서도 ‘행성’, ‘여우’, ‘뱀’, 그리고 몇몇 명대사를 다시 들여다보려고 한다. 설명하려는 건 아니다. 그냥, 오래 기억에 남았던 장면들에 대해 말해보려는 거다.

'어린 왕자'가 지나간 ‘행성들’이 말해준 것들

어린 왕자는 자신이 살던 B612 별을 떠나 다른 행성들을 하나씩 방문한다. 그 행성들엔 다들 조금 이상한 어른들이 살고 있다. 왕, 허영심 많은 사람, 술꾼, 사업가, 가로등지기, 지리학자. 각각의 사람들은 무언가에 빠져 있다. 자기만의 논리에 빠져서, 아이가 와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어른들이다. 읽다 보면 이상하게 익숙하다. 누군가 떠오르기도 하고, 나 자신 같기도 하다.

다들 정작 중요한 건 안 보고, 이상한 것만 붙잡고 사는 느낌. 숫자만 세는 사업가라든지. 처음엔 그냥 우스워 보였던 장면들이 자꾸 생각났다. 그게 진짜 어른들이 사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어린 왕자는 그런 사람들을 보고서 조금씩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한다. 혼란스러워하고,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이 독자인 나한테도 같이 날아온다.

“나는 어떤 별에 살고 있지?” 그런 식으로. 그 여정의 끝엔 지구가 있다. 그리고 그 지구는, 다른 별들과는 조금 다르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뭔가가 바뀌기 시작하는 행성이다.

여우가 가르쳐준 관계의 진심

여우는 이 이야기의 중심 같다. 가장 조용한데, 가장 오래 남는 존재. 어린 왕자와 여우는 처음엔 서로 관심이 없다. 여우는 “너와 나는 아직 아무 의미가 없어”라고 말한다. 그 말이 좀 서운했는데, 곧바로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특별해질 거야”라고 이어진다. 그때부터 무언가 달라진다.

“길들인다는 건 관계를 맺는 거야.” 이 말은 정말 자주 떠오른다. 누군가와 오래 함께한 시간들, 의미도 없고 특별하지 않았던 순간들이 사실은 다 그런 과정이었던 것 같아서. 그리고, “네가 네 장미를 소중히 여기는 건, 네가 그 장미를 위해 시간을 들였기 때문이야.” 이건 그냥... 들었을 땐 별거 아닌데, 문득 어느 날 마음에 확 들어온다.

살면서 왜 어떤 사람이 특별한지, 설명할 수 없는 감정 같은 걸 여우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여우가 해주는 말.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이 문장은... 어쩌면 책 전체에서 가장 조용하고도 강한 말일지도 모른다. 그날 여우와 헤어지는 장면, 거기 오래 머물게 된다. 여우는 결국 울고, 어린 왕자는 돌아간다. 그게 끝이지만, 그 장면은 끝나지 않고 머릿속에 남는다.

뱀의 말, 그리고 보이지 않는 마지막 이야기

지구에서 어린 왕자가 처음 만나는 건 뱀이다. 근데 그 장면은 너무 조용해서, 그냥 흘려보내기 쉽다. “나는 너를 너의 별로 돌려보낼 수 있어.” 뱀이 그렇게 말한다. 그 말이 처음엔 이상하다. 그냥 무서운 존재인가 싶었는데, 끝까지 읽고 나면 조금 다르게 들린다. 어린 왕자는 결국 돌아가기로 한다. 그리고 그 순간 다시 뱀을 찾는다. 그가 말했던 ‘돌려보낼 수 있다’는 게, 죽음을 말하는 거란 걸 알게 된다.

그런데 그 장면이 생각보다 슬프지 않다. 오히려 담담하고, 따뜻하기까지 하다. “내 몸은 너무 무거워.”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어릴 땐 이해 못 했던 말인데, 요즘은 자주 떠오른다. 무거운 것들. 말하지 못했던 감정들. 어린 왕자는 뱀에게 물리고 쓰러진다. 그 장면을 작가는 묘하게 조용하게 그린다. 죽음이 꼭 끝이 아니라는 듯.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같은 느낌. 뱀은 처음부터 끝까지 말이 많지 않다. 대신 그가 남긴 말들은 짧지만 이상하게 깊다. 여우가 관계의 시작을 알려줬다면, 뱀은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이 책은 한 번 읽고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상하게, 자꾸 다시 꺼내게 된다. 어릴 때는 그냥 신기한 별들과 인물들, 여우와 장미, 뱀 이야기로만 읽혔다. 근데 지금은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 다르게 느껴진다. 누군가를 떠올리게도 하고, 예전의 나를 마주하게도 만든다. 정확히 뭐가 좋다고 말하기 어려운데, 계속 마음에 남는다. 여우의 말처럼, 함께한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남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린 왕자는 아마 지금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장미를 돌보고, 여우를 기억하고, 그 작은 별 위에서 매일 해지는 걸 바라보면서.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근데 그게 이 이야기의 진짜 힘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