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만과 편견은 시간이 잘 닳지 않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00년이 넘은 이야기인데도, 읽다보면 지금 얘기를 하고 있다는 순간이 많이 나옵니다. 결혼과 계급으로 이루어진 19세기 영국 사회가 배경이지만, 이소설이 붙잡는건 사람마음입니다.
첫인상으로 누군가를 재단하는 습관, 자존심 때문에 한 걸음 물러서는 태도, 오해가 쌓이면서 관계가 삐걱거리는 순간들. 그런 것들이 놀라울 만큼 오늘과 닮아 있습니다.
여기서는 줄거리와 인물을 중심으로, '오만과 편견'이 왜 아직도 생생한지 다시 한 번 들여다보려 합니다.
사랑보다 먼저 부딪힌 건 자존심이었다 – 줄거리 정리
소설은 베넷 가문의 다섯 자매가 주인공으로 시작이 됩니다. 어느 날 부유한 청년 빙리 씨가 이사 오고, 동네가 들썩입니다.
베넷 부인은 그 소식에 마음이 아주 급해집니다. 딸들이 많고, 집안 사정상 결혼이 곧 미래가 되는 시대였으니까요,
드디어 무도회가 열리고 그곳에서 엘리자베스 베넷은 빙리 씨의 친구, 다아시를 처음 만납니다.
문제는 첫인상입니다. 다아시는 너무 고고하고, 너무 무뚝뚝합니다. 사람들 속에 있어도 어딘가 혼자 따로 있는 느낌이고요. 특히 무도회에서 엘리자베스를 무시하듯 말하는 장면은 그녀의 마음에 확실히 남습니다. 그 뒤로 엘리자베스에게 다아시는 ‘오만한 남자’가 되고, 그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단순히 싫어하는 감정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해가 끼어들고, 자존심이 끼어들고, 서로의 판단이 계속 엇나갑니다. 엘리자베스는 다아시를 ‘오만하다’고 확신하고, 다아시는 엘리자베스가 속한 세계를 ‘자기보다 아래’라고 보고 있습니다. 감정도 있지만 그 감정을 인정하기까지의 거리도 길어요.
그 갈등이 가장 크게 폭발하는 순간이 다아시의 첫 번째 청혼입니다. 그는 사랑을 고백하면서도, 그 사랑이 얼마나 “불리한 선택”인지 같이 말해버리거든요. 듣는 입장에선 사랑이 아니라 평가처럼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엘리자베스는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그리고 그 거절이 중요한 이유는, 그녀가 감정 앞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후 다아시는 자신의 방식으로 변합니다. 말로 설득하기보다 행동으로 보여주고, 엘리자베스가 오해한 부분을 풀어갈 기회를 만들죠. 엘리자베스 역시 시간이 지나며 생각이 조금씩 바뀝니다. 상대를 미워했던 이유가 정말 옳았는지 돌아보게 되고, 결국 자기 안의 편견을 마주하게 됩니다. 둘의 사랑은 ‘갑자기 불타오르는’ 로맨스가 아니라, 사람 하나를 제대로 이해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지나 완성되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로맨스이면서 동시에 인간 심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관계가 변하는 과정이 너무 현
제인 오스틴, 사랑을 가장 날카롭게 그린 작가
제인오스틴의 소설은 대부분 사랑과 결혼에 대한 애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읽다 보면 그녀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로맨스 자체가 아니란걸 바로 알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결혼할까?", "무엇을 기준으로 배우자를 선택할까?" 같은 질문이 작품 안에 깔려있습니다.
당시 여성에게 결혼은 단순히 사랑의 결실이 아니라, 생존의 방식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베넷 부인이 딸들의 혼처에 집착하는 모습이 과장처럼 보이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현실적입니다. 웃기면서도 웃기기만 하진 않죠. 그게 오스틴의 무서운 부분입니다.
엘리자베스는 그런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입니다. 그렇다고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도 아니고요. 다만 그는 감정 없는 결혼을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결혼이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 안에서 자기 기준을 지키려 합니다. 이 지점에서 엘리자베스는 당대 소설 속 여성 주인공들과 결이 다릅니다.
오스틴의 문장은 날카로운데도 가볍게 읽힙니다. 풍자가 있고, 유머가 있고, 사람을 한 번 비틀어 보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그래서 '오만과 편견'은 달달한 로맨스라기보다, 사람 마음을 해부하는 심리극에 더 가까울 때가 많습니다.
왜 지금 다시 읽어야 할까?
사랑은 시대가 바뀌면서 더 자유로워진 면이 있지만, 동시에 더 복잡해졌습니다. 조건을 덜 보는 것 같아도 결국 우리는 여전히 판단하고, 비교하고, 스스로도 모르게 줄을 세웁니다. 첫인상 하나로 사람을 미리 결론 내리고, 자존심 때문에 말을 돌리고, 오해를 풀 시간보다 각자 마음을 닫는 속도가 더 빠르기도 합니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지금의 연애가 겹쳐 보이는 이유가 그겁니다. 둘이 특별히 드라마틱해서가 아니라, 너무 인간적이어서요. 결국 관계를 바꾸는 건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라, 솔직함과 이해라는 단순한 것들이라는 사실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말 한마디를 어떻게 꺼내느냐, 상대를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관계를 바꿉니다.
그리고 이 소설이 지금 독자들에게 특히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 중 하나는, 엘리자베스의 주체성입니다. 그는 누군가에게 선택받기 위해 움직이지 않습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을 내립니다. ‘선택받는 사람’이 아니라 ‘선택하는 사람’으로 서 있는 인물이죠. 그 태도가 200년이 지나도 여전히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고전은 재미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오만과 편견'은 그 편견을 꽤 쉽게 깨는 소설입니다. 오래돼서 고전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남을 만해서 고전이 된 이유를 보여줍니다.
'오만과 편견'이 계속 읽히는 이유는 결국 간단합니다. 사람 마음이 변하지 않아서입니다. 오만, 편견, 자존심, 후회, 용기, 그리고 뒤늦은 이해까지. 그 감정들이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를 통해 지금도 살아 움직입니다.
2025년에 읽는데도 이렇게 생생하다면, 어쩌면 이 소설은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의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읽는 사람마다 자기 마음의 어느 부분을 꼭 한 번 건드리고 가는, 그런 종류의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