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 독서모임에 선정도서였습니다. 그때 절반을 읽다가 접었는데 이번에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낄지 기대가 되는 책입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은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자전적 소설로, 우울과 자기부정, 사회와의 단절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읽는 내내 마음이 편하진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번아웃을 겪는 직장인에게는 이 불편함이 내 얘기 같아서 더 가까이 다가오기도 해요. 고전이라서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인간 실격'이 감정이 바닥난 현대인, 특히 직장인에게 어떤 울림과 통찰을 남기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사회적 가면 속에서 무너지는 자아
'인간 실격'의 주인공 요조는 늘 사람들을 웃깁니다. 겉으로만 보면 밝고, 유쾌하고, 문제 하나 없는 사람처럼 보이죠. 그런데 그 웃음은 사실 ‘가면’입니다. 버티기 위한 가면. 요조는 사람들 속에 섞여 있으면서도, 끝내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그 감각이 너무 날것이라, 읽다 보면 숨이 턱 막힐 때가 있어요.
이 지점이 요즘 직장인의 마음과 겹칩니다. 기대에 맞추느라 애쓰고, 팀 분위기 깨지 않으려고 감정은 눌러두고, 늘 괜찮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일. 하루 이틀이면 모르겠는데, 그게 몇 년 쌓이면 사람은 서서히 닳습니다. 웃고 있지만 속은 텅 비어 있는 느낌. 요조는 그걸 오래, 아주 오래 버틴 사람처럼 보입니다.
요조가 품는 “나는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다”는 감정은, 실적과 평가로만 존재가 정리되는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낯설지 않을 겁니다. 열심히 했는데도, “그래서 성과는?”이라는 한마디로 다 정리되는 날이 있잖아요. 요조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어쩐지 밀려나 있고, “혹시 나만 이상한가”라는 생각에 갇힌 사람들에게 '인간 실격'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너무 가까워서 더 아픈 이야기입니다.
번아웃이라는 현대인의 질병
'인간 실격'은 다자이 오사무 자신의 삶이 겹쳐진 소설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실제로 자살 시도와 중독, 우울에 시달렸고, 작품 속 요조 또한 실패와 방황을 거듭하며 자신을 ‘실격’이라 부릅니다. 이 정서는 낡은 비극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지금의 번아웃과 닮아 있어요. 놀랄 만큼요.
번아웃은 단순히 피곤한 게 아닙니다. 쉬어도 회복이 안 되고, 무언가를 해도 감정이 따라오지 않는 상태. ‘내가 나 같지 않다’는 느낌이 어느 날부터 붙어버리죠. 요조가 겪는 자괴감, 정체성의 흔들림, 사람들과의 단절은 오늘날 많은 직장인이 조용히 앓는 감정과 맞닿아 있습니다. 말로 설명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없는 척하기도 어려운 그 감정들요.
이 책이 더 강하게 남는 이유는, ‘회복’ 같은 말을 쉽게 꺼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조는 무너지고, 또 무너집니다. 독자에게 희망을 친절히 건네지도 않죠. 대신 지금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그 위험한 자리를 정직하게 보여줍니다. 때로는 “힘내”라는 말보다, 내 고통을 있는 그대로 비춰주는 문장이 더 위로가 됩니다. '인간 실격'이 그런 책입니다. 공감이 부족한 날, 마음이 너무 무거운 날, 이 책을 읽으면 최소한 이런 생각은 들 수 있어요. “이 감정이 나만의 것은 아니구나.” 아주 작지만, 그 안도감이 이상하게 오래갑니다.
자아성찰의 계기
'인간 실격'을 읽고 나면 “나를 정면으로 보게 됐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요조의 고백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안에 있던 상처나 두려움이 툭 하고 튀어나오거든요. 숨겨둔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냥 덮어두고 있었던 것들 말입니다.
이 책은 ‘인간답게 산다’는 게 무엇인지 묻습니다. 더 정확히는,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나”를 건드립니다. 일이라는 구조 안에서 자꾸만 나를 놓치고 있는 직장인에게는, 잠깐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요조의 말들이 불편한데, 한편으로는 “내가 모른 척하던 마음”을 정확히 짚는 것 같아서요.
그리고 '인간 실격'은 단순한 비극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요조의 처절한 고백이 너무 솔직해서, 독자도 결국 자신에게 조금 더 솔직해지게 됩니다. 감정이 완전히 소진된 상태에서 “나는 뭘 위해 이렇게 살지?”라는 질문이 떠오른 사람이라면, 이 책은 일종의 경고처럼 읽힐 수도 있어요. 무섭지만 필요한 경고요.
문학이 꼭 치유만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때로는 진실을 보여주는 게 먼저입니다. '인간 실격'은 ‘우리는 누구나 어느 정도의 실격을 안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조용히 보여줍니다. 그래서 슬픈데, 이상하게 위로가 됩니다. 내 고통을 부정하지 않고, 그걸 끌어안는 법을 배우게 되는 순간이 오기도 하니까요.
결론: 무너졌다면, 책을 통해 멈추어야 할 때
'인간 실격'은 무너진 존재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그 무너짐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는 책입니다. 직장 생활에 지치고 감정이 바닥난 사람에게 이 작품은 공감과 질문을 동시에 던집니다. 다시 일어서려면, 먼저 멈춰 서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멈춤을 책 한 권이 대신 알려줄 수도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