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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소설 (7년의 밤, 심리, 다시 읽기)

by 달려라피터팬 2025. 12. 26.

정유정소설 - 7년의 밤
정유정소설 - 7년의 밤

 

 

정유정의 '7년의 밤'은 나온 지 꽤 된 소설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2025년에 다시 집어 들었을 때, 전혀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처럼 더 가깝게  느껴졌다.처음 읽었을 때보다 더 무겁게 다가온 장면도 있었고, 예전엔 그냥 지나쳤던 문장이 자꾸 발목을 잡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읽는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페이지를 넘기기 싫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먼저 따라가지 못해서.

'7년의 밤' 한 가족의 몰락, 그 시작의 밤

'7년의 밤'은 결국 한밤의 이야기다. 단 한 번의 밤. 세령호에서 벌어진 그 사건 이후로, 몇 사람의 인생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읽다 보면 사건 자체보다 그 이후가 더 오래 남는다. 사고, 살인, 복수 같은 단어보다도 그 뒤에 이어지는 시간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누군가는 숨고, 누군가는 기다리고, 누군가는 망가진 채로 버틴다.
서원은 아이였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는데, 모든 것을 떠안게 된 아이. 아버지 서흥수가 저지른 일은 분명 크고 무겁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지’를 단정 짓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세령호는 그냥 배경이 아니다. 읽다 보면 그 호수가 숨을 쉬는 것처럼 느껴진다. 모든 걸 알고 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존재처럼. 죄책감과 기억을 그대로 품고 있는 장소. 이상하게 자꾸 떠오른다. 실제로 가본 적도 없는데.
한밤의 선택 하나가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답은 끝내 나오지 않는다.

정유정 소설에는 ‘심리’가 흐른다

정유정의 문장은 빠르다. 그런데 가볍지는 않다.
읽히는 속도와, 마음에 쌓이는 속도가 다르다. 문장은 앞으로 나가는데, 감정은 뒤에서 천천히 따라온다. 그래서 자꾸 멈추게 된다.
특히 서흥수라는 인물. 처음엔 분명 불편하다. 쉽게 미워할 수 있을 것 같은 인물이다. 그런데 그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복잡해진다.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해서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는 말이 많지 않은 순간들이 있다. 중요한 장면에서 오히려 설명이 줄어든다. 그 침묵이 불안하다. 그래서 더 생각하게 된다. 문장이 멈춘 자리에, 내 감정이 들어가 버린다.
가끔은 너무 현실 같아서, 읽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때도 있다. 그게 이 소설의 가장 무서운 점일지도 모르겠다.

왜 지금 다시 읽어야 할까?

2024년에 '7년의 밤'을 다시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든 감정은 불편함이었다.
사람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 걸까. 한 사람의 실수는 어디까지 따라가야 하는 걸까. 그리고 그 죄는 누구에게 남는 걸까.
예전엔 그냥 이야기로 읽혔던 질문들이, 지금은 현실처럼 느껴진다. 뉴스를 보다 멈칫하게 되는 이유와도 닮아 있다. 누군가의 선택이, 전혀 상관없던 사람에게까지 흘러가는 장면들.
요즘 심리소설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도, 아마 이런 불편함 때문일 것이다. 가볍게 소비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읽고 나서 마음을 어지럽히는 이야기. '7년의 밤'은 그런 소설이다.
영상으로 만들기엔 너무 많은 감정이 남아 있다. 장면은 옮길 수 있어도, 그 침묵까지 옮기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글로 읽는 게 더 맞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7년의 밤'을 덮고 나서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정리하고 싶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였는지, 어떤 메시지였는지 말로 묶어두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그 밤이, 그 사람들의 시간이 계속 마음에 남아 있었다.
지금 이 책을 다시 읽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아직 준비가 덜 된 건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소설은 다 읽고 나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
아마도 각자의 마음속에서, 각자 다른 방식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게 조금은 무섭고,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