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부터 눈이 가던 책이었는데 노벨상을 받고 나서야 보게 되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을 받은 작가의 제품이라 기대하며 구매했던 책입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처음 읽을 때부터 마음을 편하게 두지 않는 소설입니다. 이야기 자체는 조용한데, 읽는 사람 안쪽을 계속 건드립니다. 단순히 ‘채식을 선택한 사람의 이야기’로 넘기기엔, 그 안에 담긴 감정과 질문이 너무 많습니다. 인간의 본성, 억압된 관계, 몸과 마음이 부딪히는 순간들. 요즘 독자들이 이 작품을 다시 붙잡는 이유도 아마 그 지점일 겁니다. 시대가 달라졌는데도, 이 소설이 묻는 질문은 여전히 현재형으로 남아 있으니까요.
영혜의 침묵, 말보다 앞서는 선택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는 어느 날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설명은 없습니다. 긴 대화도 없죠. 대신 침묵이 남습니다. 이 침묵이야말로 이 소설에서 가장 큰 목소리처럼 느껴집니다.
영혜는 자신의 선택을 설득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해받으려 애쓰지도 않고요. 그저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태도로 버팁니다. 이 모습이 저는 오히려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말해도 달라지지 않는 관계, 설명해도 통하지 않는 상황 앞에서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식과 닮아 있었거든요.
영혜의 침묵은 포기가 아니라 저항에 가깝습니다. 가족 안에서, 사회 안에서 요구받아온 역할을 하나씩 내려놓는 과정이기도 하고요. 그녀가 점점 말하지 않고, 먹지 않고, 인간의 방식 자체를 거부하려는 모습은 비정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너무 오래 참아온 사람이 마지막으로 자신을 지키는 방식처럼 느껴집니다. 그 점이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구조
이 소설이 불편한 이유는 영혜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혜를 둘러싼 가족은 너무도 익숙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이해보다는 체면을 먼저 생각하고, 아버지는 권위를 앞세워 선택을 꺾으려 합니다. 모두 나름의 이유를 갖고 있지만, 그 이유는 늘 영혜의 마음보다 앞섭니다.
가족이라는 공간은 보호의 이름을 쓰지만, 동시에 통제의 구조이기도 합니다. 『채식주의자』는 그 사실을 아주 노골적으로 보여줍니다. 누군가를 걱정한다는 말 아래 얼마나 쉽게 폭력이 정당화되는지, 정상이라는 기준이 어떻게 한 사람을 몰아붙이는지를요.
영혜는 그 안에서 점점 말할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표현할 언어를 잃고, 결국 몸으로밖에 저항하지 못하는 상태로 밀려나죠. 이 과정은 개인의 붕괴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처럼 느껴집니다. 요즘 독자들이 이 소설에 강하게 반응하는 것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겪어온 불편함을 더 이상 모른 척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채식’이라는 선택이 던지는 질문
『채식주의자』에서 채식은 식습관의 문제가 아닙니다. 영혜가 고기를 거부하는 순간부터, 이 선택은 몸과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됩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덧씌워진 욕망과 기대, 폭력의 흔적을 몸에서부터 떼어내려 합니다.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선언, 옷을 벗는 장면, 나무가 되고 싶다는 말까지. 이 모든 것은 극단적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분명한 방향을 갖고 있습니다. 더 이상 대상이 되지 않겠다는 의지, 소비되지 않겠다는 거부. 저는 이 대목에서 이 소설이 왜 지금까지 계속 읽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요즘 우리는 몸을 둘러싼 기준과 통제에 훨씬 민감합니다. 외모, 성 역할, 정상성에 대한 요구들. 『채식주의자』는 그 문제를 아주 날것의 형태로 꺼내 놓습니다. 그래서 불편하고, 그래서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영혜는 자신의 몸으로 존재를 말하는 인물이고, 그 방식이 극단적이기에 질문은 더 선명해집니다.
'채식주의자' 지금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
『채식주의자』는 한 사람의 파괴를 그린 소설처럼 보이지만, 읽고 나면 오히려 질문이 남습니다. 정말로 무너진 건 누구였을까, 무엇이었을까 하는 질문 말입니다.
요즘 독자들은 영혜를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그녀의 선택 앞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어디까지 참고 살아왔는지, 어떤 순간에 침묵을 선택했는지. 이 소설이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읽히는 이유는 거기에 있습니다.
『채식주의자』는 다 읽고 나서도 쉽게 덮히지 않는 책입니다. 조용히 남아 있다가, 문득 다시 생각나고, 어느 순간 다시 펼쳐보게 됩니다. 아마도 그 질문들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